1979년 작품활동을 시작한 이후 40여 년간 세계의 지배적 언어에 맞서는 ‘여성의 언어’ ‘몸의 언어’로 한국 현대시의 미학을 갱신해온 김혜순 시인, 그가 20년 전 펴낸 첫 시론집 『여성이 글을 쓴다는 것은』의 개정판이 문학동네에서 출간되었다. 여성의 글쓰기에 대한 김혜순 시인의 천착과 그의 작품세계 본령이 밀도 높은 산문으로 처음 정리된 책이 『여성이 글을 쓴다는 것은』이었다.
이 책에서 그는 “문학적 보편성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남성적 원전에 부대끼면서도, 페미니즘이라고 불리는 서양적 담론으로부터도 멀리 떨어져 사는 제3세계의 여성시인”으로서, “이 이중 삼중의 식민지 속에서 나는 여성의 언어로 여성적 존재의 참혹과 광기와 질곡과 사랑을 드러내는 글쓰기에 대해 말해야 한다. 이것이 나에게 시를 쓰게 하고, 이 글을 쓰게 하는 동력이다”(6쪽)라 설파했다.
“나는 매번 발명해야 한다, 언어를. 나에겐 선생님도, 선배도 없다. 나에게 모국어의 여성적 전범은 없다. 당연히 내 몸의 내재적・파동적 원리에 따라 새로 발명한 언어가 뛰어놀 수 있는 장(場)도 없다”(181쪽)고 여긴 김혜순 시인은, ‘바리데기’ 신화에 기대어 여성시를 완전히 새롭게 들여다보는 작업에 착수하였고, 여성시인의 다양한 발성을 ‘거부와 위반의 시학’으로, ‘고유한 사랑과 치유의 형식’으로 새로이 위치 지을 수 있었다.